착한 인간의 딜레마를 말하다. << 흥부의 딜레마 >>
● 제 목
흥부의 딜레마
● 저 자
장의관
미국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립통일교육원 교수와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및 정책대학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전공분야인 정치이론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 저술이 있으며, 일반인을 위하 인문교양 저서로는 『생각하는 사회 : 사회를 만나는 철학 강의』가 있다.
- 저자
- 장의관
- 출판
- 미지북스
- 출판일
- 2014.10.15
● 내 맘대로 평점
정보성 ★★★☆☆
● 서 평
이 책을 끝으로 철학 관련 서적은 멀리하려고 한다.
철학 = 비판
철학은 비평가 혹 비판가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비판한다.
아무리 바른 소리를 해도 다른 철학자가 또 비판하고 또 비판한다.
한 가지 주제가 난도질을 당한다.
내 성격과 맞지 않는 학문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생산적인 서적 위주로 읽어나아가려고 한다.
맘속에 비판과 불만만 가득한 내가 되어가는 게 좋지는 않다.
책의 제목처럼 흥부와 놀부의 고전 설화로 시작한다.
고전 설화 속 인물 흥부는 착하고 가난한 인물로, 흥부의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자식을 위해 지렁이를 물어다 키우는 제비가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제비를 구하며 ‘권선징악’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질문한다. “그렇다면 지렁이는 왜 구하지 않았는가?”
바로 이 질문에서 '흥부의 딜레마'는 출발한다.
저자는 우리의 삶 속에서 친숙했던 주제들을 재조명하면서 이들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지금껏 수용했던 판단과 견해들이 과연 적절한지 여부를 재질문하는 시간을 갖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였다.
1. 흥부의 생태미학
우리는 왜 귀여운 동물만 보호하려 하는가?
흥부는 귀여운 제비는 구하지만, 혐오스러운 지렁이나 구렁이는 구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미적 기준에 따른 생명 가치의 차별’을 지적한다. 인간은 종달새의 지저귐에는 감탄하면서, 곤충의 윙윙거림에는 불쾌감을 느낀다. 이는 자연 그 자체보다 인간 중심의 심미 기준이 작동한 결과다.
우리가 멸종 위기 동물 보호에 대해 논할 때조차, 고릴라·고래·곰 등 외모가 매력적인 종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은 생태적 편향성과 가치 왜곡의 전형적 사례다. 곤충이나 벌레보다 북극곰이나 코뿔소, 오랑우탄 등을 홍보물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기부금을 끌어오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형을 하는 이유는 내적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보다 외적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더 쉽기 때문이다. 또한, 내적 아름다움을 남들이 인지하려면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흥부의 생태정의론
모든 생명은 동등한가?
저자는 “약자를 돕는다"라는 흥부의 선의조차 선택적 정의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제비는 구하고 지렁이는 외면하는 흥부의 행위는 감정적 유대감, 친숙함, 외모 등의 기준에 의존한 판단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의가 아닌 편애다.
제비가 지렁이를 사냥하는 것이 생존 때문이라면, 구렁이도 같은 이유로 제비를 노린다. 어느 쪽이 진짜 ‘악’인가? 저자는 이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적 자연관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태 정의론적 성찰을 유도한다.
역지사지해 보라는 윤리적 요구는 사회적인 공감 형성을 위한 시발점이다.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피해자에게 낮은 형량을 부여하는 판사들을 향해 '피해자가 당신 가족이라고 해도 같은 형량을 부여할 텐가?'라고 외치는 것 또한 타인의 설득을 확보하는 데 가장 강력한 논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중립적이고 균형적인 정의의 논리라기보다 가족 이기주의라는 커다른 약점에 노출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3. 흥부의 프라이버시론
왜 우리는 사적 삶을 스스로 노출하는가?
책의 후반부는 현대사회의 민감한 이슈인 프라이버시 문제를 다룬다. SNS 시대의 우리는 자녀의 일상, 연애, 가정생활까지 타인에게 공개하면서 관심받는 존재가 되려는 충동에 빠져 있다.
한편, 타인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소비문화도 만연하다. 책은 이러한 현상이 ‘관종’과 ‘관음증’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으며, 이는 시민 지성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징후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신체 부위 일부분을 무단으로 촬영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게 구는 것에 반해 자신의 삶은 SNS를 통해 드러내고 뽐내는 관음증적 모습은 상반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4. 흥부의 역사사죄론
집단의 과오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저자는 사회가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성찰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기억의 선택성을 경계한다. 특정 집단의 상처만을 기억하고 다른 집단의 고통은 외면하는 태도는 진정한 화해와 포용을 가로막는다.
그는 기억과 사죄는 보편적 도덕성과 책임의식에 근거해야 하며, 선별적인 반성과 정치적 도구화는 오히려 분열을 조장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5. 흥부의 포용론
다문화는 동화인가, 공존인가?
다문화 담론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이름만 포용이고 실제로는 외국인 신부에게 김치 담그기를 시키는 ‘문화 동화’에 머물러 있다.
저자는 다문화주의란 주류가 소수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자세여야 하며, 이는 주류 한국인에게 요구되는 태도라고 말한다. 결국 다문화 사회의 핵심은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감수성이다.
끝마치며, 이 책은 생태·미학·도덕·사회 문제를 넘나들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착함’과 ‘옳음’을 철저히 해체한다. 흥부의 ‘선함’을 출발점으로 삼아, 개인 윤리와 사회 구조, 감정과 이성, 생태와 정의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 물음은 단순하지 않지만, 결코 어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외면해온, 하지만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