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BRARY/2025

미국 경제의 역사서 << 팔로알토, 자본주의 그림자 >>

by 만개리 2025. 5. 11.
300x250

 

● 제 목   

팔로알토(PALO ALTO), 자본주의 그림자

● 저 자   

말콤 해리스(Malcolm Harris)

1988년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이사한 후 팔로알토에서 자랐고 메릴랜드 대학교를 졸업한 젊은 작가이다. 2009년에 설립한 문화 및 문학 비평 온라인 잡지 <The New Inquiry>에서 활동 중이다. 2011년 월가점렴시위 등 사회활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진지하면서도 무심한 듯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 옮 김   

이정민

● 내 맘대로 평점   

정보성 ★★★★★

● 서 평   

시작하기에 앞서 도서관에서 책을 집어 들었을 때 2~3번 다시 꽂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책 속의 오아이스인 삽화가 하나도 없고 책이 570페이지로 너무 두꺼웠다. 글자도 빽빽하여 다른 소설책과 비교했을 때 1.5배를 더 읽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완독을 하니 미국 백인들이 비백인들에 대해 뼛속까지 깊은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깊게 알게 되었다.

 

 

 

  팔로알토(Palo Alto)의 위치와 지역적 특징

팔로알토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남쪽, 산타클라라 밸리에 위치한 도시이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비옥한 토지, 태평양과의 접근성으로 19세기부터 농업·무역 중심지로 발전했다.

 

 

  팔로알토가 실리콘밸리로 발전하게 된 계기

스탠퍼드 대학(1885년 설립)의 존재는 고등교육·기술 연구의 기반을 제공했고, 팔로알토의 장점은 지리적 개방성·학문과 산업의 밀착·연방정부와의 군사기술 협력이 가능한 점이다. 반면 단점은 원주민 축출·노동 착취·자본권력 집중이라는 불평등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스탠퍼드가 주도해 군수·전자기술 산업을 유치하며 기술거점으로 급성장했다. 1971년 지역 언론인이자 기업가 돈 호프(Don Hoefler)가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고, 이는 반도체(Silicon Chip) 산업이 지역경제의 핵심임을 상징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기술자본주의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 안보, 기술혁신, 창업생태계, 벤처자본의 결합은 미국의 경제·정치·군사적 패권 강화에 기여했다. 동시에 기술권력 집중·사회적 불평등 심화라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1부 (1850년 ~ 1900년) - 골드러시와 스탠퍼드 가문의 기원

1.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서부 자본주의의 출현

1848년 서터즈 밀(Sutter’s Mill)에서 금이 발견되며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이주민을 불러모았고, 캘리포니아는 인구 폭증·도시 급성장·상업·금융 중심지로 재편됐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는 물류·금융의 거점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원주민의 대규모 학살·토지 강탈·사회적 약탈이 만행되었다. 캘리포니아 자본주의는 동부와 달리 법적 질서보다 투기·속도전·비공식적 권력에 의해 작동했고, 강력한 사적 이익 추구가 합법화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배경은 후일 서부형 기업가정신과 군사·기술·금융 복합체의 토대를 제공했다.

 

사진 : Unsplash의 Drei Kubik

 

2. 대륙횡단철도와 아마사 릴런드 스탠퍼드의 부상

1860년대 미국 정부는 동서 해안을 잇는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지원했다. ‘빅 포(Big Four)’로 불린 사업가 집단, 그중에서도 아마사 릴런드 스탠퍼드는 철도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철도 건설 자금으로 토지 보조금·연방 대출을 적극 활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력(캘리포니아 주지사·상원의원)을 장악했다. 스탠퍼드는 철도를 통한 자본·인구 이동의 핵심 중개자로 자리 잡았으며, 그의 방식은 공공재를 사적 이익화하는 서부형 자본주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아마사 릴런드 스탠퍼드 (사진 : 나무위키)
사진 : atlasnews.co.kr

 

3. 스탠퍼드 가문의 사회적 부상과 개인사

스탠퍼드는 부동산·철도·상업투자로 자산을 확장하는 동시에 지역 정치·사회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외아들 릴런드 주니어는 15세에 장티푸스로 요절한다. 부부는 이 비극을 계기로 지역사회·후세에 기여할 ‘살아 있는 기념비(living memorial)’로 대학 설립을 결심한다. 이 배경에는 서부형 실용주의·기업가정신·기술주의를 중시하던 스탠퍼드 가문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4. 스탠퍼드 대학 설립과 초기 지향

1885년 설립된 스탠퍼드 대학은 미국 동부 엘리트 중심 대학들과 달리 실용적 기술·응용학문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공학·농업·사업학·법률 등 산업과 직결되는 학문이 강조되었고, 기업·정부와의 밀착 협력도 장려되었다. 초기부터 스탠퍼드 대학은 산업발전·자본축적·지역사회 연계를 사명으로 삼았다. 이는 후일 실리콘밸리 기술거점으로 진화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미국식 자본주의와 고등교육·기술혁신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한다.

 

스탠퍼드 대학 (사진 : 나무위키)

 

      2부 (1900년 ~ 1945년) - 스탠퍼드 대학의 성장과 농업·자본주의 결합

1. 제인 스탠퍼드의 대학 운영과 의문사 사건

1893년 아마사 스탠퍼드가 사망한 후, 부인 제인 스탠퍼드가 대학 운영을 주도했다. 그녀는 남편의 기업가정신·실용주의 이념을 유지하면서도, 대학의 재정적 자립과 공공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1905년 제인은 의문사로 생을 마쳤다. 당시 총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독살설이 제기됐으나 명확한 해명 없이 사건은 종결됐다. 이 사건은 대학 재정권·운영권을 두고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며, 이후 대학 운영이 전문 경영체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된다.

2. 데이비드 스타 조던 총장 체제와 과학주의 강화

초대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연과학·우생학·사회진화론에 기반한 교육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과학적 사고·경쟁력·엘리트 양성을 강조하며, 스탠퍼드를 미국 서부 최고의 연구대학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군사기술·산업 응용 연구에 주목해 정부·기업 협력을 적극 모색했다. 이는 대학이 학문기관을 넘어 군산복합체의 일원으로 기능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사진:위키피디아)

 

3. 오렌지 산업 성장과 선키스트 브랜드 탄생

19세기 후반 캘리포니아는 지중해성 기후와 철도망 확장에 힘입어 오렌지 재배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농민들은 품질 향상·시장 확장을 위해 협동조합을 결성했고, 이는 1893년 California Fruit Growers Exchange로 통합됐다. 이후 이 조직은 ‘Sunkist’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세계로 감귤류를 판매했다. 이는 농업·금융·기술·마케팅이 결합된 선진형 자본주의 모델로, 스탠퍼드 출신 인사들과 긴밀히 연결되며 농산업 자본주의의 실험장이 되었다.

 

 

4. 허버트 후버의 성장과 대공황

스탠퍼드 1기 졸업생 허버트 후버는 광산공학자로 국제적 경력을 쌓은 후 공공행정·정치로 진출했다. 그는 1929년 미국 31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곧바로 대공황이 발생했다. 그의 기술적·기업가적 해결책은 금융위기·사회불안에 무력했고, 자본주의 위기의 단면을 드러냈다. 후버의 실패는 기술주의·기업가정신 만능론의 한계를 상징하며, 스탠퍼드식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후버의 리더십의 최대업적으로는 후버 댐을 들 수 있다. 후버 댐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댐이다.

 

허버트 후버 (사진:위키피디아)
후버 댐 (사진:나무위키)

 

      3부 (1945년 ~ 1975년) - 군산복합체와 스탠퍼드의 재편

1. 제2차 세계대전과 군수산업 협력

1939년 이후, 스탠퍼드 교수진·졸업생은 미국 국방기술·군수산업에 본격 참여했다. 항공공학·레이더·암호해독·폭탄 개발 등 군사기술 연구가 급증했다. 스탠퍼드는 연방정부·군과 밀접히 협력해 군산학 복합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대학의 재정기반·기술력 강화에는 도움이 됐지만, 군사기술 의존도 심화라는 문제를 동반했다.

2.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 설립과 기업유치

1951년 총장 프레더릭 터먼 주도로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가 설립됐다. 이는 민간 기업·군사기술 기업을 대학 인근에 유치해, 연구·상업화·기술이전이 용이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휴렛팩커드(HP) 등 초기 전자기술 기업들이 입주하며, 실리콘밸리 초기 산업단지의 모태가 되었다. 대학은 토지임대료·기술이전료로 재정확충에 성공했다.

 

 

 

3. 초기 컴퓨터·전자기술 확장

1950~60년대, 스탠퍼드는 컴퓨터공학·반도체·전자기술의 선구적 연구거점으로 부상했다. 페어차일드·휴렛팩커드 등 지역 기업과 긴밀히 협력하며, 상업적 기술 응용·제품화·벤처 창업 지원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 스탠퍼드는 명시적으로 ‘기업가적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

 

 

 

      4부 (1975년 ~ 2000년) - 실리콘밸리의 형성과 기술자본주의 심화

1. 반도체 산업 탄생과 실리콘밸리 명칭 등장

1957년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 설립으로 반도체 산업이 본격화됐다. 페어차일드에서 독립한 기업가들이 잇따라 신생 기업을 창업하며, ‘페어차일드 스핀오프 생태계’가 확산됐다. 1971년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이 언론에 등장하며, 지역 정체성이 공고화됐다.

 

 

2. 스탠퍼드와 벤처캐피탈 결합

이 시기 벤처캐피탈 산업이 급성장했다. 스탠퍼드 인맥·교수진·졸업생들은 자본유치·창업지원을 활발히 했고, 기업·대학·투자가 연결된 기술창업 생태계가 정착됐다. 이는 학문·기업·군사·자본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미국형 기술자본주의 모델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3. 콜드워 군산복합체와 기술 발전

냉전기 국방기술·우주개발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실리콘밸리 기업·스탠퍼드 연구진은 연방정부 프로젝트에 대거 참여했다. 이는 지역 경제·기술력을 고도화시켰으나, 군사기술 의존·기술권력 집중도 심화됐다.

 

 

      5부 (2000년 ~ 2020년) - 현대 실리콘밸리와 기술권력 집중

1. 빅테크 기업의 부상

1980년대 이후 애플·구글·페이스북·인텔·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데이터·소프트웨어·플랫폼 기반 경제가 급속히 확장되며, 실리콘밸리는 글로벌 기술혁신의 심장부로 자리 잡았다.

 

 

2. 기술 불평등·노동위기 심화

빅테크 중심 산업구조는 고임금 엔지니어·경영진과 저임금 노동자·지역 주민 간 격차를 심화시켰다. 주거난·노동자 불안정성·사회 양극화가 확대되었고, 기술권력이 자본·정치권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3. 군사·감시기술 확장과 윤리적 위기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국방·감시기술·AI·데이터 분석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구글·팔란티어·AWS 등이 미국 정부·군·정보기관과 계약을 체결하며, 민간·군사 경계 모호화·감시사회 우려가 커졌다.

 

 

4. 기술자본주의 모델의 위기와 반성

저자는 이 시기를 스탠퍼드식 기술자본주의가 자초한 윤리적·사회적 위기의 절정으로 본다. 실리콘밸리는 기술혁신과 자본축적의 성공 사례지만, 불평등·권력 집중·사회적 비용을 감추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1.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성지’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폭력과 불평등의 산물이다.

말콤 해리스는 실리콘밸리를 단순히 기술혁신의 중심지로 보지 않는다. 그는 19세기 서부개척·원주민 학살·노동착취·토지강탈이라는 폭력적 자본 축적이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밸리 모델의 기초였음을 강조한다. 현대 빅테크의 데이터 축적·감시·독점 행위는 과거의 자본주의적 폭력이 새로운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 기술·자본·군사 권력의 결합은 민주주의·공공성에.

스탠퍼드는 창립 초기부터 공공과 민간·군사와 민간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며 성장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스탠퍼드 출신들은 군사·감시기술·국가권력과 밀착하며 기술권력을 강화해왔다. 이는 오늘날 감시자본주의·AI 감시체제·민주주의 약화라는 글로벌 위기의 뿌리다. 저자는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경고한다.

3. 기술혁신은 필연적으로 불평등·노동착취를 동반해왔다.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성공 이면에는 저임금 노동자·이주민·지역민들의 노동·희생·배제가 있었다. 선키스트 농민·후버광산 노동자·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현대 빅테크 하청 노동자들이 모두 그렇다. 저자는 실리콘밸리가 기술혁신으로 사회 전체의 삶을 개선한 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의 권력 집중노동유연화·지역 파편화를 가속화했다고 분석한다.

4. 실리콘밸리 모델은 세계로 수출되며, 글로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스탠퍼드식 ‘기업가적 대학·벤처 생태계·군산학 복합체’ 모델은 전 세계 국가·도시·대학으로 복제되고 있다. 이는 기술·자본 집중→사회 양극화라는 결과를 반복시킨다. 저자는 ‘팔로알토 모델의 세계화’가 국제적 차원의 불평등·권력 집중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5. 기술자본주의의 윤리적·사회적 대안 모색이 시급하다.

저자는 단순한 기술비판이나 과거 반성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실리콘밸리식 기술권력이 초래한 윤리적 위기·사회적 부작용을 직시하고, 공공성 강화·기술민주주의·자본 통제와 같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독자에게 ‘기술혁신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새로운 사고틀과 실천방향을 요구한다.

 

요약하면, 실리콘밸리를 단지 ‘기술성공 신화’가 아닌

미국 자본주의의 본질·한계·위기가 응축된 사례로 해석하며,

독자에게 비판적 역사인식·윤리적 재구성·사회적 책임성을 촉구합니다.

 



 

 

> 2025.05.11

반응형